🎒 짐 줄이느라 놓쳤던 것들
미니멀 여행의 불편한 진실
“적게 들고, 가볍게 떠나자”
미니멀 여행의 낭만은 분명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불편함과 타협해야 했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2주간의 백팩 여행 중, 짐을 줄이다 놓쳤던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공유합니다.
🧣 1. 날씨 앞에선 무기력했다
‘옷 하나 더 챙길걸’ 후회한 순간들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건 옷의 개수였습니다. ‘3벌이면 충분하다’는 여러 여행자들의 조언을 따랐고, 결과적으로 백팩 공간은 넉넉해졌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날씨는 예상을 초월했고, 그 가벼움이 어느새 불편함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기온의 급격한 변화였습니다. 특히 5월 중순의 파리와 프라하는 아침저녁 기온이 10도 이하로 뚝 떨어졌고, 저는 얇은 자켓 하나와 기능성 이너 하나로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현지인들은 코트를 꺼내 입고 다니는데, 저는 얇은 겉옷 하나에 어깨를 웅크린 채 거리를 걸었죠. 처음엔 버틸만 했지만, 며칠 지나자 컨디션이 확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이 칼칼하고 기운이 없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 “그냥, 얇은 니트 하나라도 더 챙길걸…”
두 번째 문제는 땀과 세탁 주기의 간격이었습니다. 미니멀 여행의 핵심은 빨래 루틴인데, 기후나 일정상 세탁이 불가능한 날도 분명 존재합니다. 더운 날 반나절 걸어 다니다 보면 속옷과 이너가 땀에 젖고, 그걸 말릴 수 없는 날엔 그냥 축축한 옷을 다시 입어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속옷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짐을 줄이는 건 선택의 기술이지만, 기후는 예측이 아니라 변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조차 없을 때, 여행은 쉽게 피로해졌습니다.
💄 2. ‘나’는 사라지고, 기능만 남았다
감성도, 취향도 포기해야 했던 순간
미니멀 여행은 ‘필수’에 집중하는 여행입니다. 생존을 위한 옷, 필수적인 세면도구, 꼭 필요한 기기들만 남기고 나면, 어느 순간 거울 속의 나는 익명성 속의 여행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걸 느낀 건 화장품 파우치를 열었을 때였습니다. 미니멀 짐 싸기 원칙을 따르기 위해 쿠션 파운데이션 하나, 틴트 하나, 작은 선크림 하나만 챙겼습니다. 그런데 도시마다 풍경이 달라지고, 내가 찍는 셀카도 바뀌는데 내 얼굴은 늘 똑같았어요. 아무 표현도, 색감도 없이 피곤한 표정만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뮌헨의 고풍스러운 거리에서 셀카를 찍던 날, 거울을 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 “이 여행에 내 스타일은 없구나.”
두 번째로 아쉬웠던 건 악세서리와 향수입니다. 목걸이 하나, 귀걸이 하나, 혹은 작고 가벼운 향수 하나만 있었어도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요. 짐을 줄인다는 명목 하에 다 빼버리고 나니, 여행의 감성이 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도시의 낭만을 입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옷만 입는 느낌이었달까요?
미니멀 여행은 ‘버리는 기술’인 동시에, 때론 ‘나를 지우는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능만 남기고 감정을 뺀다면, 여행은 효율적이지만 재미는 반감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느꼈습니다.
🧼 3. 짐은 줄었지만, 생각은 더 늘었다
모든 순간을 계산하게 만든 선택의 피로
짐이 적으면 가볍습니다. 몸은 편하죠. 하지만 그 가벼움 뒤엔 끊임없는 선택의 피로가 따라왔습니다.
“오늘 뭐 입지?” “이거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이걸 꺼내면 내일은 뭘 입지?”
이런 고민이 매일, 반복됐습니다.
하루 이틀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이 일주일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옷, 물건, 스케줄까지 모든 걸 계획하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단 하나의 충전 케이블로 휴대폰과 보조배터리, 이어폰을 순차적으로 충전해야 했고, 유일한 여벌 바지를 며칠째 입다 보니 언제 빨아야 할지도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더욱이 숙소에서는 짐을 쓸 때마다 다시 정리하고, 물건을 꺼낼 순서까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파우치 하나 꺼낼 때도 ‘이걸 꺼내면 다른 파우치가 무너진다’는 생각에 매번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 짐은 줄었는데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니멀한 짐은 ‘선택’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책임이 됩니다. 감정적 피로도는 쌓이고, 여행의 여유는 조금씩 줄어들었죠. 짐을 많이 들면 몸이 힘들고, 짐을 적게 들면 머리가 피곤한… 결국 여행이란 어느 쪽이든 불편함을 감수하는 예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마무리하며
미니멀 여행은 멋집니다. 가볍고, 효율적이며,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도 숨어 있습니다.
✔ 날씨에 대한 무력감
✔ 나만의 감성 결핍
✔ 끊임없는 선택의 피로
이것들이 바로, 짐을 줄이는 대신 내가 감수한 것들이었습니다.
다음 여행에는 짐을 조금 더 늘리더라도,
나를 더 챙기고, 감정을 더 담아가는 ‘밸런스 있는 미니멀 여행’을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