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 달의 시간, 작은 도시가 가르쳐준 느림의 미학

by 반하다영원히 2025. 6. 4.

한 달의 시간, 작은 도시가 가르쳐준 느림의 미학

 

작은 도시가 가르쳐준 느림의 미학

 

1. 시계를 잊는다는 것 – 하루가 길어질 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


도시에서의 하루는 늘 '시계' 위에서 흘러갔다. 정확한 시간에 눈을 떠야 했고, 지하철 시간표에 맞춰 뛰었으며, 업무와 약속과 알람 사이에서 분 단위로 움직였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시간을 관리하는 법은 익혔지만, 시간을 '사는' 법은 잊어버린 듯했다. 한 달 동안 작은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내가 처음으로 배운 일은 시계를 내려놓는 법이었다. 굳이 오전과 오후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고, 점심시간을 꼭 정해진 시각에 맞출 이유도 없었다. 시간은 나를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변의 빛과 소리, 감각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였다.

 

아침이 밝았다는 건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말해주었고, 오후가 깊어졌다는 건 기운 빠진 햇살과 창가의 그림자가 알려주었다. 늦은 저녁이 되면 마을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하루는 손목 위의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결로 다가왔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나는 시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곁에 두고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잊고 나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 꽃집 앞에 놓인 들국화,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는 사람. 이런 풍경들은 늘 존재했지만, 너무 빠르게 걷던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도시는 속도를 미덕이라 여겼지만, 여기서는 멈춤이 미덕이었다. 이 작은 멈춤들이 모여 하나의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리듬에 나를 맡기며 처음으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2. 느린 음식, 느린 대화 – 기다림이 주는 깊이에 대하여


도시의 삶은 늘 ‘즉시성’을 강요했다. 배달 앱을 열면 20분 안에 음식이 도착했고, 대화는 텍스트로 짧고 빠르게 오갔다. 밥을 먹으면서도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았고, 커피 한 잔조차 ‘테이크아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작은 도시에서의 한 달은 그런 즉시성의 강박을 하나씩 벗겨내는 시간이었다. 이곳에는 ‘조금 느리지만 따뜻한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혼자 운영하는 작은 식당. 음식을 주문하면 주방에서 국물 끓는 소리가 들리고, 그 사이 주인은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뭐 하셨어요?”

 

처음엔 그 기다림이 어색했다. 1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졌고, 말수가 많은 사장님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그 기다림을 즐기고 있는 걸 깨달았다. 뚝배기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된장찌개처럼, 이곳의 음식은 손끝의 정성이 들어갔다. 그 정성은 시간 속에서 쌓이는 것이었고, 그 시간은 맛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맛있다는 감탄도, 배부르다는 포만감도, 모두 기다림 덕분에 더 진하게 느껴졌다.

 

대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는 말이 빨리 오가지 않는다. 동네 주민과 인사를 나누면, 그 안부는 ‘형식’이 아니라 ‘관심’이었다. 오가는 말이 많지 않지만, 그 침묵조차도 하나의 대화로 여겨졌다. 빠르고 많은 말보다, 천천히 나누는 시선 하나가 더 깊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이 느림의 문법을 배우며,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더는 채팅창의 초록불만 보고 안심하지 않았고, 짧은 응답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림 속에서, 말 없는 시간 속에서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3. 자연과 리듬 맞추기 – 삶이 아닌 생명이 느껴질 때


작은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나는 아침마다 새 소리에 눈을 떴다. 시끄러운 알람이 아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노래, 개 짖는 소리, 누군가 마당을 쓸고 있는 빗자루 소리였다. 그 소리들은 마치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고, 나는 그 부드러운 흐름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자연이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도시는 늘 자연을 ‘소풍처럼’ 소비했지만, 이곳에서 자연은 그저 삶의 일부였다.

 

하루가 밝으면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끝났다. 비가 오면 나가지 않고,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도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캘린더에 적힌 일정에만 의지하지 않았고, 날씨와 계절에 따라 하루의 내용을 바꾸는 유연함을 배웠다. 이런 리듬은 단순한 ‘환경 적응’이 아니라, 나를 자연의 일부로 돌려놓는 회복의 과정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순간은 비 오는 날의 오후였다. 도시에서는 우산을 챙기고 지하철로 뛰어들었겠지만, 여기서는 그저 비를 바라보며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리듬을 지켜보고, 그 일정한 속도에 나도 호흡을 맞췄다.

그 순간,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하게 들려왔다. 무엇을 성취하지 않아도,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이 느림의 시간은, 결국 ‘삶’이 아닌 ‘생명’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