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작은 도시였을까? – 탈출이 아닌 회복으로서의 선택
작은 도시 한 달 살기: 대도시 탈출 실험"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다양한 각도와 경험을 다룰 수 있도록 주제를 뽑아 그 중 왜 작은 도시였을까? – 탈출이 아닌 회복으로서의 선택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1. 도망치듯 떠났지만, 마음은 회복을 꿈꿨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다. 매일 아침, 지하철 플랫폼 위에서 이어지는 줄과 줄 사이, 조용한 절망이 공기처럼 스며든다. 익숙해진 피로, 무뎌진 감각, 그리고 끝없이 요구되는 ‘빠름’. 처음에는 그런 속도에 적응하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은 속도에 쫓겨 형태를 잃고 있었다. 그렇게 문득,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기보다는, 어떤 본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에 가까웠다.
작은 도시로 떠나기로 한 결정은, 실은 긴 시간 쌓여온 갈증의 결과였다. 한적한 골목길, 탁 트인 하늘,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내가 원하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라 익숙했던 감정이었다. 조용한 하루,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서울의 아파트 숲에서 잃어버렸던 감정들이 작은 도시라면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이 여정은 도피가 아닌 회복이었다. 무너진 리듬을 다시 짜고, 지친 마음에 쉼표 하나를 찍기 위한 시도였다.
여행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기분 전환도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마치 원래의 삶이 거기서 시작된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숨을 쉬고, 밥을 짓고, 걷고, 글을 쓰고 싶었다. 작은 도시의 느린 리듬에 몸을 맡기며, 시간의 속도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는 삶을 실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떠났다.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2. 작은 도시가 가진 느림의 기술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침묵’이었다. 고요한 길, 느릿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주말에도 문을 닫은 가게들. 처음에는 이 정적이 어색하고 심지어 불안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방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낮을 견디는 일은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느림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목적지가 아닌 과정을 중시한다. 아침마다 동네 빵집에서 마주치는 할아버지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다. 카페 주인은 손님과 눈을 맞추고 안부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시장의 상인들은 물건보다 이야기로 하루를 채운다.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나는 서울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던 ‘존재의 밀도’를 체험했다. 시간은 흐르지만 쓸려가지 않고, 사람은 움직이지만 소모되지 않았다.
작은 도시는 어떤 의미에서는 느림을 ‘기술’처럼 체득하고 있었다. 빠르게 소비하고 떠나보내는 대신, 하나의 순간을 길게 끌어안는 능력. 나는 이 느림 속에서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을 수 있었고, 밥 한 끼를 정성껏 차려 먹을 수 있었으며, 이름 모를 나무 앞에서 멈춰 설 수 있었다. 그런 일상은 특별할 것 없지만, 내 안의 무엇인가를 바꾸고 있었다. 효율이 전부였던 삶에서, 깊이가 중요해지는 삶으로의 전환. 그 전환의 시발점이 바로 ‘작은 도시’였다.
3. 돌아보니, 도시는 나를 모르게 했다
서울에 다시 돌아온 첫날,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수많은 간판, 빠르게 걷는 사람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얼굴들. 익숙한 풍경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작은 도시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나니, 내가 그동안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도시의 빠름은 단지 시간의 속도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을 스스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무언의 규칙이었고, 개개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거대한 흐름이었다.
작은 도시에서는 스스로를 바라볼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아침에 어떤 기분으로 눈을 뜨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힐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간의 무감각을 깨우고, 나를 더 뚜렷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반면 대도시는 자꾸 나를 분산시켰다. 경쟁, 비교, 자극의 연속 속에서 나는 나를 놓치고 있었다.
이 실험의 의미는 그래서 컸다. ‘작은 도시 한 달 살기’는 어떤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다시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잡하고 빠른 삶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느리고 단순한 일상 속에서 더 깊은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체감했다. 도시의 삶이 모두에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회복이 필요했고, 그 회복은 오직 작고 조용한 도시에서만 가능했다.